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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자베 <알리스와 소시지> 줄거리 및 독후감취미/책 2019. 2. 5. 19:21
"너는 안 예뻐. 그러니 너는 ...... 다정한 여자가 돼야해."
- <알리스와 소시지>
도서관을 기웃거리다가 노란색 표지가 이뻐서 무작정 읽어보게된 책이다. 귀여운 느낌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는 '알리스라는 소녀가 소시지를 어지간히 좋아하는가보다'라고 생각하고는 쉽게 넘길 수 있는 동화책일거라 단정지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시종일관 한 여자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 어떤 감정적 표현도 곁들이지 않은 기계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는 문체가 우화적인 느낌이 들게 했다. 일종의 잔혹동화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그렇듯 이 책은 표지와는 달리 결코 유쾌한 마음으로는 읽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로마의 미녀, 알리스. 그녀는 아름다운 굴곡을 가진 자신의 몸과 매끄러운 피부를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평범한 여자였다. 기독교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순수한 처녀. 하루일과의 반을 외모가꾸기에 치중하고 남성들의 탐욕스런 눈빛을 즐기지만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하는, 신데렐라 신드롬에 빠진 바보가 바로 그녀였다.
만족스런 삶을 보내던 그녀는 어느날 아버지에게 충격적인 소리를 듣고만다. "너는 예쁘지 않아. 남자들을 친절하게 대해야만 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그 어느때 보다도 아름답게 치장한 그녀에게 아버지의 생각없는 말 한마디는 비수가 되었다. 여자를 노리개로만 취급하는 아버지. 자신의 삶만 중요한 이기적인 어머니. 알리스의 정신적 고통은 비상식적인 주변 인물로 인해 파탄의 길을 걷고 만다.
예쁘지 않기에 남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만 한다는 아버지의 말은 알리스에게 큰 공허감을 안겨주었다. 깊게 패인 상처는 낫기는 커녕 썩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그녀는 닥치는 대로 먹기 시작했으며 남성들을 집에 들여 철저히 봉사했다. 식욕과 성욕은 상처를 잊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망각일 뿐이다. 식사와 섹스는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해주는 진통제였다.
그러다가 정신병원에서 나온 아름다운 쌍둥이를 만난다. 자신에게 그 어떤 성적 요구를 하지 않은 유일한 존재에 알리스는 알 수 없는 따스함을 느낀다. 만남은 지속되었다. 쌍둥이는 그녀의 몸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날 소시지를 먹고 싶어하는 쌍둥이에게 알리스는 히스테리를 부리고 만다. 얼마전 화가인 동생에게 받은 자신의 초상화는 커다란 소시지였기 때문이다. 알리스는 쌍둥이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전 재산으로 소시지를 사지만 그토록 원하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계시를 받았다. 자신이 직접 소시지가 되는것이다. 그 어떤 소시지보다 크고 맛있는 소시지가 되는것. 그러면 쌍둥이들도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녀는 날마다 자신을 바닥에 치대어 소시지의 푸른 점박이와 비슷한 멍을 만들고 살을 찌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날 불쑥 찾아온 쌍둥이는 커다란 소시지를 발견하고 게걸스럽게 먹어버린다.
자신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쓰레기로 취급받을때의 느낌을 아는가? 알리스는 외모라는 유일한 자존심이 짓밟혀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 되어버렸다. 남성 우월적인 사회속에서 억압당하고 쾌락의 도구로 전락하고 마는 여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소시지. 처음부터 소시지가 되길 바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회는 소시지를 원했고 그녀가 소시지가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분명 알리스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소시지가 되는 길을 택했다. 알리스의 비극은 타인의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대인의 위태로운 정신상태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게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조금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밌는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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