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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추행으로 미투당한 작가 박범신 『은교』 완독 후기
    취미/책 2019. 2. 2. 22:00






    88p.
    불 꺼진 이층 방에 돌아누워 있는 선생님과 어두운 아래층 주방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나 사이가 영원처럼 멀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나의 선생님..... 이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자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졌다. 내 몸이 다음 순간 바닥을 알 수 없는 우물 밑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찢어지는 듯 가슴이 아팠다. 나는 가만히 쭈그려 앉아서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234p.
    슬픔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눈물로 덜 수 있는 슬픔이고, 다른 하나는 눈물로도 덜 수 없는 슬픔이다. 내가 만날 그날 밤의 슬픔은 후자였다.

     

     

    367p.
    "그럼 조찬모임, 다녀오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순간 내 몸이 불끈 하고 들렸다.

    그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예상 밖의 충동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전광석화로 일어났고, 문을 열었고, 발작하듯이 현관까지 달려나왔다. 무의식적 행동이었다. 놀라울 만큼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가슴속에서 갑자기 방망이질 소리가 나고 있었다. "여보게!" 내 목소리가 날카롭게 터져나왔다. "네?" 지하 주차장으로 반쯤 내려간 상태라서 겨우 가슴까지만 보이는 서지우가 얼굴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과 그의 시선이 빗물이 흐르는 허공에서 짧게 만났다.

    나는 현관에 비틀, 주저앉았다. "멍청한......" 이라는 말이 잇사이로 빠져 나왔다. 멍청하기 때문에 사형수는 내 눈빛이 보내는 우주적인 신호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372p.
    "운전해온 분도 그런 말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차를 빌려갔었는데, 아무래도 불안해 들렀다고요. 저 안에서 자고 있다가, 그분이 깨워서 일어났었지요. 짜증이 좀 났지만, 그분이 하도 불안해하셔서 봐줬던 거예요." "정말 운전자가 그런 말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네. 분명히 기억해요. 나도 마음이 아팠지요. 의도적으로 누가 너트를 풀어놓았다는 눈치가 보이자 그분이 갑자기 울기 시작해서요." "울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그랬다고 생각하면, 왜 눈물이 안 나오겠어요? 그분은 차를 몰고 떠날 때까지 계속 울었어요. 비도 오고, 참 안됐다 싶었었지요." 스승인 이적요 시인이 차를 조작해놨다는 걸 알았을 때 서지우는 충격과 함께 완전히 버림받은 자의 깊은 슬픔을 느꼈을 터였다. 울면서, 차라리 모르는 체 차를 몰고 가다가 죽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는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결국은,
     
    '눈물'

    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은교.

    부끄럽게도 끝부분에서 눈물 콧물 다 짜내며 읽었다 (그것도 카페에서!)

    김첨지를 이을 슈퍼 츤데레, 늙은 시인 이적요의 젊음에의 갈망과 고뇌와 아끼는 제자에 대한 뒤틀린 애정표현 등이 안타까웠다. 제자 서지우 또한 시인을 깊게 사랑했고, 오랫동안 서로를 아꼈던만큼 은교로 촉발된 갈등이 극단적으로 해소되며 소설이 끝난다.

    둘의 이같은 이중적인 감정이 내면의 소용돌이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는데, 1인칭 시점에서 각자의 심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쉽게 감정이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시인은 스스로 자신의 자동차를 고장내 제자에게 빌려주고, 마지막 순간 그를 붙잡는다. 이적요는 본인이 보낸 이 우주적인 신호를 서지우가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고 그를 보낸 후 가슴 아파 하지만   

    서지우는 그 신호를 눈치채고 정비소에 가서 차를 정비한다. 의도적으로 누군가 너트를 풀어놓았다는 정비사의 말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스승에게 버림받았다는 충격에 휩싸인다. 결국 눈물에 시야를 뺏겨 사고를 당하는데, 끝내 서로의 오해를 풀지 못하고 끝나버렸다는 점에서 굉장히 슬펐다. 사고 후 시인은 사랑하는 이를 제 손으로 죽인 죄책감과 상실감에 스스로를 혹사시켜 죽음에 이른다.

     

     

    읽는 내내 시인과 서지우의 복잡한 감정이 느껴져서 굉장히 몰입했던 것 같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라 잘 넘어가는 책이지만 각 인물간의 감정선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읽은 후에 후유증이 꽤 있는 책인 것 같다.


     

     

     


     


    내용은 참 감동적이고 좋은데 작가가 성추행범이라서 제 서재에서 퇴출되어... 중고서점에 가버린 비운의 책입니다.

    예스에서 13150원에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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