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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탄소년단 추천, 무라카미하루키 <상실의 시대> 독후감
    취미/책 2019. 2. 2. 23:09

     

     

     

     

     

      그런 압도적인 석양 속에서 나는 문득 하쓰미 씨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일으켰던 내 마음속의 소용돌이가 무엇이었던가를 이해했다.  그것은 채워질 수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채워질 수 없을 소년기의 동경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타오르는 듯한 순진무구한 동경을 벌써 까마득한 옛날에 어딘가에 잊어버리고 왔기에, 그런 것이 한때 내 안에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오랫동안 잊어버린 채 살아온 것이다. 하쓰미 씨가 흔들어놓은 것은 내 안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나 자신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거의 울어버릴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이지 특별한 여자였다. 누군가가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구원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가사와 선배도 나도 그녀를 구원하지 못했다. 하쓰미 씨는-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랫듯이- 인생의 어느 단계에 이르자, 문득 생각난 것처럼 스스로의 생명을 끊었다. 그녀는 나가사와 선배가 독일로 가버린 이 년 후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그 이 년 후에 면도칼로 손목을 그었다.
      그녀의 죽음을 내게 알린 사람은 물론 나가사와 선배였다. 그는 본에서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하쓰미의 죽으으로 뭔가가 사라져버렸고, 그것은 견딜 수 없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나는 그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두 번 다시 그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대표작 하나 정도는 꼭 읽어봐야겠다.' 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라 지금껏 망설이고 있었다.

    젊은시절의 상실의 아픔과 재생을 다룬 청춘들의 필독서라기에 요즘 인간관계, 연애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차에 드디어 읽게 되었다.

    책을 구입하기까지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어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서울에 여행을 간 김에 강남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찾았지만 그 큰 서점에서 단 한 권의 중고도 없던 책!!!

    결국 부산으로 돌아와 기웃거린 서면점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새책인데 중고가에 판매되어서 더 좋았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문체가 어렵지 않아 쉽게 읽히고 묘사하는 장면들이 상당히 감성적이다. 도시적인 감성을 잘 살린 작가라는 극찬이 딱이라고 생각한다. 돌격대가 와타나베에게 준 반딧불이를 날려보내는 장면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해서 괜시리 눈물이 났던 장면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결핍된 사람들이다. 기즈키의 죽음으로 정신병을 얻은 나오코. 담담한척 하지만 절친의 죽음으로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와타나베. 부모님의 죽음을 애써 밝은 척 이겨내고 있는 미도리. 애인의 여성편력에 망가져가는 하쓰미. 등등 이유가 무엇이든 등장인물 모두가 "외로움"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 지독한 외로움에 하쓰미와 나오코는 자살을 택했고, 와나타베는 나가사와를 따라 다니며 하룻밤의 관계로 채우려한다. 하지만 관계 후에 와타나베는 묘한 죄책감과 함께 오히려 더욱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미도리는 특유의 생기와 밝음을 가지고 와타나베에게 접근한다.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해결책을 내놓은 다른 등장인물과 달리 미도리는 삶과 역동성을 가지고 다른이에게 기꺼이 도움을 요청하며 이겨낸다.

      와타나베에게 그저 잠들때까지 껴안고 있어 달라고 응석부리는 장면, 봄날의 곰만큼 네가 사랑스럽다며 미도리를 안아주는 와타나베. 이 장면은 미도리의 외로움이 절절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와타나베가 이전에는 의미없는 성관계로 외로움을 잊으려던 것과 달리 미도리에겐 포옹과 키스가 전부이다. 하지만 둘은 서로에게 기대며 상실의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 나간다. 소설이 끝나는 시점까지 둘이 연인이었음에도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와타나베가 진정 사랑했던 것은 나오코가 아니라 미도리인 것 같다.

    (나오코도 사랑의 형태이긴하나 이성과의 관계라기 보다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함께 나눈 친구에게 느끼는 우정이 기즈키의 죽음으로 책임감과 동정이 어우러지며 나타난 형태라고 생각한다.)

      행위 후에 오히려 허무감을 느꼈다는 '그' 성관계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던 나오코의 관계와는 달리 미도리만이 성행위 없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의미의 치유라고 할 수 있다. (<상실의 시대>에서 나오는 성관계는 치유와 재생을 위한 몸부림인 것 같다.)

     

     

      나오코의 죽음 이후 방황하던 와타나베는 죽은 나오코의 옷을 입고 온 레이코씨와 열정적인 하룻밤을 나누고 이별한다. 나오코와 비슷한 체구에 소녀같은 레이코씨. 레이코씨는 와타나베에게 죽은 나오코의 현신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둘의 하룻밤은 단순히 쓸데없이 자극적인 장면이 들어갔다기 보다는 나오코와 와타나베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허무했던 하룻밤의 성관계와 달리 후회없이 열정적이고 멋진 하룻밤을 보냈다는 점에서도 둘의 행위는 단순한 욕정을 의미하는 장면은 아니라고 본다. 레이코씨 또한 나오코를 잃은 슬픔을 와타나베와 공유하며 위로받았다.

      그래서 죽음으로 상징되는 나오코와 열정적인 이별 후에 와타나베는 삶으로 상징되는 미도리에게 달려갔다. 몇번이나 미도리의 이름을 외치며 주인공이 밝은 빛 속에 감기는 느낌을 받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단순하게 텍스트만 읽어내려가면 야설로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주인공들에게 이입하여 글을 읽다보면 그들의 상실감이 절절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행위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초반에 느껴지던 아련하고 그리운, 사무치는 고독감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 쯤에선 도약과 희망의 느낌으로 변하는 감정선을 다른 독자들도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하루키의 명성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추천해서 다시 화제가 되었다고 하네요. 세계적인 아이돌의 효과가 이렇게 대단합니다...!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제목이 바뀌어 출간된 버전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소설의 내용과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예스에서 13500원에 판매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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