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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R.R.마틴 <얼음과 불의 노래 4부 까마귀의 향연1 >
    취미/책 2019. 2. 2. 23:23

     

     

     

    #1.

     '돌아가시긴 했지만 아버지의 얼굴에는 기품이 서려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입매만은......'

      티윈 경의 입꼬리는 약간 위로 올라가 잇었는데 그래서 조금 멍한 느낌을 주었다.

      또한, 눈을 감고 있었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담녹색에 금빛 반점이 흩어진 채 빛을 발하는 듯한 티윈 경의 두 눈은 보는 이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상대를 꿰뚫어 볼 수 있었고, 상대가 얼마나 나약하고 쓸모없고 추악한지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불쑥 옛날 일이 떠올랐다. 여름날의 잔디처럼 파릇파릇했던 소녀 시절, 아에리스 왕의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궁정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금이 필요하다면 전하께서는 티윈 경을 전하의 요강에 앉히면 될 일입니다."

     아에리스와 아첨꾼들이 큰 소리로 웃는 동안 그녀의 아버지는 와인 잔 너머로 리커 경을 응시했다.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났을 때도 그는 계속 리커 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리커는 고개를 되돌려 얼굴을 바로 했을 때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그 시선을 무시하고 맥주를 한 잔 마셨으나 아버지의 위축되지 않는 시선에 결국에는 견디지 못하고 벌게진 얼굴로 자리를 뜨고 말았다.

     '이제 티윈 경은 영원히 두 눈을 감고 말았어.'

     세르세이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사람들은 내 시선에 움찔하고 내가 얼굴을 찌푸리면 떨게 될 거야. 나 역시 사자니까.'

     밖의 하늘이 흐려 그레이트 셉트 안도 어둑했다. 만약 비가 그치면 비스듬히 새어 드는 햇살이 천장에 매달린 수정들을 통과하면서 시신 위에 무지개를 드리우게 될 터였다. 캐스틀리 록의 영주에게는 무지개가 드리워질 만했다. 그는 위대한 남자였다.

     '나는 더 위대해질 거야. 지금부터 천 년 후에 마에스터들이 이 시기를 서술할 때 아버지는 단지 세르세이 왕대비의 부친으로 기록될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

     토멘이 그녀의 소매를 당겼다.

     "이 고약한 냄새는 뭐죠?"

     '내 아버지 냄새.'

     "죽음의 냄새야."

    #2.

    ​"얼굴에 비를 맞으니 기분이 좋아, 샘. 비가 마치 눈물같아. 좀 더 여기있게 놔두게. 오랫동안 울어보지도 못했으니까."

    늙고 쇠약한 마에스터 아에몬이 굳이 갑판에 남겠다고 하면 샘도 선택의 여지없이 함께 남을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샘은 망토로 몸을 감고서 비가 살갗을 부드럽게 적시는 것을 느끼면서 노인의 곁에 머물렀다. 하지만 노인은 비의 감촉을 잘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곧이어 샘은 노인이 잠들어 버린 것을 알았다.

    "마에스터."

    샘이 아에몬의 한쪽 어깨를 부드럽게 흔들며 말했다.

    "마에스터 아에몬 님, 일어나세요."

    아에몬이 보이지 않는 희뿌연 두 눈을 떴다.

    "에그인가?"

    비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가운데 그가 말을 이었다.

    "에그, 내가 늙어버린 꿈을 꿨어."

    샘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채로 무릎을 꿇고 노인을 안아 올리고는 선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샘이 이제까지 남들에게 힘이 세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고 아에몬의 검은 옷이 비에 젖은 탓에 원래보다 두 배는 무거웠지만 그렇더라도 아에몬은 어린아이 정도의 무게밖에 되지 않았다.

    #3.

    '당신이 죽는다고 해서 우리가 달아나지는 못해요. 나를 사랑한다면 어서 물러나요.'

    아리안느는 말을 하려고 애썼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르 아리스 오크하트는 애절한 눈빛으로 아리안느를 응시하고 나서 말에게 금빛 박차를 가하고 돌진했다.

    아리안느 마르텔은 그 반 정도도 용감하거나 아니면 그 반 정도도 어리석은 행위를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안 돼!!!!"

    아리안느가 날카롭게 소리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첫 번째 화살은 아리스의 두꺼운 참나무 방패를 관통해 그의 어깨에 박혔다. 두 번째 화살은 그의 관자놀이를 스쳤다. 투척용 창이 그의 말 옆구리에 박혔다. 하지만 말은 비틀거리면서도 건널 판자를 밟으며 배로 올라갔다.

    "안 돼!"

    어느 소녀가 소리쳤다. 어느 어리석고 작은 소녀가. 그것은 아리안느 자신의 목소리였다.

    "안 돼, 제발 그만둬요. 그래서는 안 돼요."

    세르 아리스는 말이 쓰러질 때 몸의 균형을 잃고 갑판에 내동댕이쳐졌지만 용케도 몸을 날려 말에 깔리는 것을 피했다. 심지어 그는 검도 쥐고 있었다. 그는 죽어 가는 자신의 말 옆에서 무릎으로 일어나려고 애썼다.....

    .... 그리고 자신의 앞에 아레오 호타가 우뚝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백기사는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호타의 롱액스가 세르 아리스의 어깨를 내리쳐 오른팔을 잘랐고 엄청난 피가 뿜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양손으로 잡고 옆으로 휘두른 롱액스의 날이 아리스 오크하트의 목을 잘랐다. 잘려 나간 머리가 허공에서 빙그르 돌다가 갈대들 사이로 떨어졌고 이어서 덤벙하는 소리와 함께 강이 그 붉은 물체를 삼켜 버렸다.

    아리안느는 언제 말에서 내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면 말에서 떨어진 것인지 그것 또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두 손과 두 무릎을 붙인 채 몸을 떨고 흐느껴 울며 저녁에 먹은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건 아냐, 아무도 다치지 않기로 되어있었어, 계획은 주도면밀했어. 나는 신중하게 행동했어.'

    ​경비병들이 그녀와 동료들에게로 몰려왔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무의미한 광경이었다. 그녀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끔찍한 핏빛 악몽을.

    '이게 현실일 리는 없어. 이제 곧 나는 깨어날 거야.'

     

    - <얼음과 불의 노래 4부 까마귀의 향연1 >

     

     

     

     

     

     

     

     

     

     


     

     

     

     

      아마도 시즌4의 피날레를 장식할 것 같은 티윈경의 죽음.

    처음 내가 얼불노를 읽었을때 라니스터 쌍둥이들은 혐오 그자체였다. 하지만 읽어 나갈수록 매력적인 캐릭터인 것 같다. 특히 세르세이는 이제 밉지만 밉지 않은 악녀로 느껴진다. 야망이 크고 잔인한 캐릭터이지만 한편으로 약하고 어리석은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다.

    티윈경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자신이 사자임을 잊지않고 아버지의 위업을 뛰어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은 '과연 라니스터 가문. 사자새끼를 키웠구나!' 싶다. 어리석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럽지만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왕대비. 자이메의 말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악녀인듯.

     

       월의 마에스터였던 아에몬이 거친 여정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은 가슴이 아팠다.

     죽임 당한 자신의 동생 에그의 꿈을 꾼 듯한데 웨스테로스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가문, 드래곤의 후손들인 타르가르옌의 아에몬이 힘없는 늙은이가 되어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게 허무하기까지 하다. 후에 대너리스가 용을 부활시키고 웨스테로스로 오기 위해 군사를 가다듬고 있는 소식을 듣고 조카딸에게 가고싶어 하는데 끝내 소망을 달성하지 못한다. 한평생을 월에서 봉사했던 인물이니만큼 작가가 행복한 결말을 주어도 되련만 다른 캐릭터들의 죽음과 같이 너무 현실적이라 씁쓸하다.

     

      도르네의 공주 아리안느는 미르셀라를 여왕으로 군림시키려다 실패한다. 공주와 내연관계이자 미르셀라의 호위무사인 아리스 오크하트가 백색의 기사답게 명예를 위해 돌진하지만 개죽임 당하는 장면은 그 전 몇몇 챕터에서 아리스의 시점에서 진행된 내용이 있어 더 슬프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공주가 미르셀라를 빼돌리기 위해 아리스를 아무 감정 없이 이용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주가 후에 탑에 유폐되어 있을때도 몇날 며칠을 정신이 반쯤나가 아리스를 그리며 울며 잠드는 것이다!

    철저하게 이해득실만으로 움직이는 킹스랜딩의 모습만 보아왔던터라 오히려 반전 없이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래서 왠지 짠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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