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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카노 교코 <무서운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취미/책 2019. 2. 3. 00:28

     

     

     

     

     

     

    렇다. 우리는 이 보도 위에 서 있다. 짙은 안개 속을 어딘지도 모른 채 헤매어 걷다가 여기에 이른 것이다. 눈 앞에 홀연히 나타난 거리를 두고 어딘가에 단단히 묶이기라도 한 듯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건 두렵다. 한 발 내딛으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 환상의 거리에 함께 녹아 사라질 것만 같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다. 강렬한 죽음의 기운에 붙들려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그저 꼼짝 못하고 서 있을 뿐.

    이 불가사의한 파스텔화는 플랑드르의 도시 브뤼헤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실제 모습 그대로는 아니다.

    이 건물은 단호하게 사람을 거부하고 있다.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고 짧은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현관문에는 어디에도 손잡이가 없다. 정면 현관 뿐 아니라 지하실로 통하는 문도 뭔가로 칠해 발라 버린 것 같다. 이래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물론 안에서 밖으로 나jr을 가둬 둔 실내의 공기는 괴어 썩어서는 벌써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내부에 죽음을 품은 채로 저택은 천천히 바다를 맞이한다. 바다는 소리도 없이 파도를 밀어 와서는 서서히 건물을 둘러싸기 시작한다. 바닷물은 분명히 멀리에서부터,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기분 나쁜 생물처럼 서서히 기어왔으리라. 처음에 파도가 닿았던 곳이 어디쯤이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저택의 토대는 이미 흠뻑 젖어 있고 광장의 포석도 절반 가까이 물에 잠겨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바다 밑이라는 기억의 밑바닥으로 가라 앉으리라.

    하지만 이 저택은 가라앉기는 해도 결코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식하지도 않을 것이다. 영원히 각인시켜 두고 싶다는 강한 집념이 함께 잠길 것이기에 저택은 예전의 모습을 언제까지고 간직할 것이다. 내부는 죽는대도 외양은 변치 않는다. 마음은 썩어도 잔상만은 선명하게 남는다. 그 겉모습을 보건대 내부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버려진 거리]는 추억에 사로잡힌 채 파멸해 가는 사람의 마음이 전해져 오기 때문에 무섭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옛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다. 결코 되살릴 수 없는 과거 앞에 그저 붙박여 서 있을 뿐이다. 과거의 유물이 이미 죽음을 품고 있음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어쩌지 못한 채 그것을 깊이 사랑한다. 그 처럼 죽음에 붙들린 사람의 마음이 전해져 와서는 보고 있는 쪽도 몸이 얼어붙는다.

     

     

    - <무서운 그림>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쉴겸 심심해서 읽어본 책. '무서운그림'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무서운 그림은 얼마 없다. 그림과 관련된 뒷이야기가 무섭다고 저자는 이야기 하지만 내가 보기엔 별로 안 무서워....

     

    윗 그림은 책에 있던 많은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한점이다.

    페르낭 크노프라는 벨기에 화가가 그린 작품이다. 그는 <죽음의 도시, 브뤼헤>라는 소설에 심취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단지 브뤼헤에서 태어났을 뿐 자란곳은 다른 곳이기 때문에 파노라마처럼 남아있는 어릴때의 기억에 의존해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직접 찾아가 볼 수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살았지만 일부러 단한번도 브뤼헤를 다시 찾지 않았다고 하는데, 덕분에 그림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 화가의 의도대로 표현된것 같다. 한때 브뤼헤는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함께 점차 쇠퇴의 길을 걷는다. 크노프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엔 이미 그가 어렸을때 보았던 활기차고 번영한 브뤼헤와는 거리가 멀었다.

     

    크노프는 한때의 화려함을 간직한채 시간의 흐름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브뤼헤의 모습을 고풍스런 건물 한채와 멀리서 다가오는 파도로 표현했다. 정성들여 그려진 창틀과 빛바랜 바다는 어쩐지 애절한 느낌이 들어서 브뤼헤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몰락에의 아쉬움 또한 묻어나는 듯하다. 

     

    그럼에도 특유의 몽환적인 표현으로 인해 쓸쓸하고 으스스한 느낌도 든다. 직설적인 공포보다 살갗에서 올라오는 음산한 느낌이 더 무섭지 않은가? 화려함과 번영의 중심지였던 브뤼헤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듯 희미하고 미약한 존재로 표현되어 이를 아는 사람들에겐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일거다.

     

     

     

     

     


     

     

     


    흥미롭게 읽을만한 책인데 제목만큼 으스스하고 무섭지는 않습니다.

    예스에서 13050원에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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